“그럴 수 있다.”라는 말은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이틀 연속 그 말을 들으며 알게 됐다.

애플 스토어에서 아이폰을 새로 사고 백업 복원을 위해 직원의 도움을 받는 중이었다. 직원의 위트 있는 장난에 빵 터진 나는, 작은 침 알갱이를 직원의 팔에 튀기고 말았다. 깜짝 놀란 민망한 마음에 쏜살 같이 닦아 주며 사과했다. 직원은 내게 “오우 그럴 수 있어요, 걱정마세요.”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으며 하던 이야기를 계속 했다. 민망함은 마법처럼 사라졌고, 고마웠다.

그 다음날, 오전부터 주식 폭락을 포함한 여러가지 마음 같지 않은 일들이 쌓인데다 일터에서 어떤 사람의 한심한 행동을 마주하게 되자, 그 사람과 그의 행동이 나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 이해하고 있음에도 감정적으로 화가 치솟아, 마인드 컨트롤 모드에 돌입했다. 어느 정도의 마인드 컨트롤을 마친 후 가까운 동료에게 오전의 일을 털어놨다.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그냥 한심해서 화가 났어요.”라는 내 말에, 동료는 “그럴 수 있어요, 상관 없는 일에도 얼마든지 화가 날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마인드 컨트롤이 마무리 된 느낌이어서, 고마웠다.

사람들은 사회의 다수가 만든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 만의 길을 가겠다고 종종 다짐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사고가 다수의 그것에 너무 어긋나지 않을까 마음 졸인다. 모순이다. 다시 말해, 내키지 않은 일을 사회가 강요할 때는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마이웨이야!”라면서도, 사회 속에서 평정심을 잃을만한 이벤트가 생겼을 때는 “지금 이 상황에서 나만 화나는 건 아니지? 내가 이상한 건 아니지?”라며 자신이 사회의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감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려고 한다.

이런 모순적인 태도를 모순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사회의 틀을 사회의 다수보다 넓게 보는 것이다. 나아가, 가까운 사람들이 사회의 틀을 넓게 보고 있다면, 마이웨이를 고수하면서도 사회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믿음을 갖기 쉽다. 어짜피 사람은 가까운 사람에게 공감과 이해를 받으면 마치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받은 것처럼 안도하기 때문에.

나도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런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 경험상 “그럴 수 있다.”는 말은 그런 가까운 사람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백 마디 주저리 주저리보다 더 따뜻하게 내 공감과 이해를 전달할 수 있는, 내 가까운 사람을 금새 안도하게 할 수 있는, 참 좋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