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법시험을 치르기까지 안경을 썼다. 시험을 마친 후 라섹수술을 했고 내 인생에서 안경은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내게 안경은 고시생 시절과 같다.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준 소중한 존재지만, 굳이 지금의 모습에 남겨두고 싶지 않은 것. 어떻게 보면 못된 마음이다. 안경 입장에서는, “누추한 너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더니 때깔 좀 나졌다고 이제와 날 버려!?”하는, 토사구팽 당한 분한 마음일 것이 분명하다.

안경은 억울하겠지만, 그 때 나는 안경이 싫었다. 어떻게든 안경을 피하고 싶어 하드렌즈 낀 눈에 먼지가 들어갔을 때의 그냥 날 죽여다오 고통까지 쉽게 감내했고, 안경을 낀 채 찍은 사진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시험이 끝나자마자 라섹하겠다고 계약서라도 쓴 것처럼 곧장 안과로 달려갔던 것이다. 수술 후에는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턱에 붙은 혹을 뚝 떼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엄마께서 내가 썼던 안경을 테만 살려서 가끔 필요할 때 돋보기로 쓰고 계시니, 나는 그 안경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그 안경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떼어버린 혹을 보고 왜 웃음이 날까. 서울행 KTX 안에서 안경 끼고 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하드렌즈로 바꿔 끼겠다고 설치다 기차 바닥에 렌즈를 떨어뜨려 청소 아주머니가 제발 나가달라고 사정하는데도 안경을 끼고 나가기가 싫어 기어이 버티고 기어다니면서 하드렌즈를 찾아 헤맨 기억(결국 찾지 못함), 공부하다 안경 벗는 걸 깜빡한 채 엎어져 자는 바람에 안경 코 받침대가 이렇게 피부에 박혀버리는 건가 심장이 내려 앉았던 기억 등이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걸 보면, 죽도록 싫었던 시간, 물건, 사람도 세월이 흐르면 추억이 되고 웃음이 되기도 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지금의 내게도 떼어버리고 싶은 혹이 있다면 언젠간 그 혹의 존재가 웃음될 날이 올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안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