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추석의 모양이 내 어릴적과 많이 변했다. 추석의 모양이 다양해졌듯 세상에는 다양한 모양의 이별도 있는데, 이번 추석에 내 가족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양가 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돌아가셨고, 양가 할머니는 여든을 넘기셨다. 한 해 한 해 달라지는 할머니의 모습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테니, 가족 모두가 모인 명절에 할머니는 먼저 이별을 이야기한다. 외할머니, 친할머니 두 분이 각기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어쩜 그렇게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말투로 말문을 여시는지. 내 가족과 할머니는 서로 이별하기 위해 준비한다. 이별의 사전 절차, 본 절차, 후속 절차.

내 가족은 다들 감정 동요도 없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웃는다. 감정 동요가 없는 척 하는건지, 그러기 위해 각자 마음속으로 오래 전부터 이별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지.

이런 차분한 모양의 이별은 낯설다. 내겐 아직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모양의 이별만 있었기 때문인가보다. 영영 이별하지 않을 것 같지만, 만약 한다면 그 때가 다음 생 일것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이별을 한다고 생각만 해도 금새 뒷통수가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모양의 이별. 그래서 ‘이별’을 ‘준비’한다는건 아직 내겐 어려운 일이다. ‘감정적인 것’을 ‘이성적으로’ 다루어야 하니까. 그리고 감정적인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척 해야할 때도 있으니까.

지난 금요일에, 곽정은 기자가 이별에 관해 자신의 SNS에 쓴 다음의 글을 읽었다. 내가 추석에 경험한 이별과 조금 다른 모양의 이별이긴 하지만, 모양에 관계 없이 ‘언성 높이는 일 한 번 없이 만나다 서로를 놓아주는’ 이별이 성숙한 이별인 걸 알지만 참 어렵다는 점에서는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살면서 누구나 숱한 이별을 합니다. 이별의 상처가 아플 때에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고 비장한 선언을 하지만, 이내 그걸 잊고 또 다른 사랑에 빠져들지요. 연애 전문가라는, 나는 한 번도 원한적 없던 (저는 기자 출신 작가입니다) 이상한 타이틀을 가진 저도 그저 사람일 뿐인지라,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를 잠시 제 곁에 두었었네요. 
‘쿨하게 헤어졌다’, ‘친구관계로 남기로 했다’라는 말이 얼마나 닳고 닳은 말인지 잘 압니다. 수많은 연예인들의 결별설 기사에 사용된 관용적 표현이니까요. 하지만 이번 이별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은 명확합니다. 한 때 사랑했지만 원래 있던 업무 파트너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한다는 것이, 그리고 이렇게 언성 높이는 일 한 번 없이 만나다 서로를 놓아주되 응원하고 지지하기로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인간으로서 깊이 성장하게 하는지를요. 우리는 명상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만난 사업가들이고, 서로의 세계관을 존중하기에 사랑했던 기자 출신 작가들입니다. 이제는 좋은 친구이며 일을 함께하는 사이로 남겠지요.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이별은 대부분 오해와 원망 눈물과 상처로 가득했지만, 이번 이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이토록 성숙한 이별을 내가 했다니. 세상 누구도 내게 주지 못했던 이 좋은 인생의 깨달음을 선물해준 그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과 지지를 보냅니다. 제가 참여한 코끼리 명상 어플도, 곧 출간될 그의 책에도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냅니다. 
모두,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혼자여서 괜찮은 삶’이 되시길.